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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나뭇가지
ㆍ작성일	07/12 (월) 01:36

ㆍ추천: 0 ㆍ조회: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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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편지를 읽고 나서
2001.2.16(금) 11:04

옛날편지를 읽고 나서
오늘도 바람이 많이 불고 무척 춥네요.
시누남편이 서울로 교육받으러 가는데
가방이 없다길래 여행용가방을 꺼냈습니다.
거기서 편지들이 쏟아졌어요.
남편이 예전에 받았던 편지들입니다.
군대간 친구가 보내온것도 있고, 어떤 아가씨 편지도 있어요.
그중에 제가 보낸 편지도 있었어요.
중매로 만나 짧은 기간에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
심정이 착잡해서 명함에 적혀진 남편 직장주소로 편지를 보냈지요.
지금 읽어보니 유치찬란하군요.
새로운 생활의 두려움으로 가득찬 편지내용 속에
남편이 늘 내게 물어보던 말이 있어요.
"깨끗이 치우는걸 좋아하느냐"
그 당시에 저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에
밤새도록 온 방을 어지르고 일하고
아침이면 제가 맡은 회사에 일하러 가느라 바쁘고.
치워야 된다는 생각자체를 해본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계속 물어봤어요.
"다림질 할줄 아느냐" "밥은 할줄 아느냐" "빨래는 할줄 아느냐"
그런 질문을 들으면서 점점 무섭고 주눅들고 그랬어요.
결혼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고 걱정되고 한숨만 나왔어요.
결혼을 한다는것이 자신이 없고 과연 내가 잘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으로 계속 머리가 복잡했어요.
결혼식날은 하나도 떨리지 않았어요.
그저 담담한 마음을 숨기려고 많이 웃었지요.
엄마는 계속 웃지말라고 하고. 딸 낳는다고.
나는 계속 웃고 있는 신부였어요.
사람들이 가득찬 식장에서도 떨리지 않았어요.
빨리 끝나버렸으면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요.
우리가 결혼하던 2월에 무척 추웠는데
신혼여행을 간 태국은 무척 더웠어요.
추운 날씨에 긴장했던 마음이 더운 날씨에 풀렸어요.
그래서 재미있게 지냈지요.
추운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결심했어요.
나는 뭐든지 잘할거라고.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남편이 첫출근 하면서
"오늘은 저녁에 라면이나 먹자. 내가 끓일께."
저는 갑자기 오기와 의욕이 생겼어요.
가까운 시장에 가서 재료들을 사와서 요리를 시작했죠.
굴을 넣어서 굴깍두기를 담고,잡채도 하고,생선전도 부치고
들기름을 발라서 김도 굽고, 나물도 무치고, 콩나물국도 끓였지요.
식사후에 먹을 식혜까지 준비했답니다.
저녁에 시누님가족도 불렀지요.
모두들 놀라서 멍해가지고 "혹시 장모님이 왔다간건 아니냐"고 남편이 묻더군요.
그래서 아니라고 했죠.
저는 언제나 음식을 작게 만듭니다. 음식남으면 골치아프잖아요.
더먹고 싶어도 없다고 하니까 모두들 아쉬워했어요.
시어머니는 아주 흡족해 하시고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철없는 저는 다음날은 농협매장에서 묵가루를 사다가
도토리묵을 쑤었답니다. 자꾸 칭찬 받으려고.
그다음 날은 두부를 만들고, 다음날은 해물탕을 끓이고.
계속 요리실습을 했어요.
문제는 돈이었어요. 재료를 사느라고 다 써 버린거예요.
어머님이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요리자랑은 그만 해라. 하셨어요.
그래서 있는 반찬으로 밥상차리게 되었어요.
그시절에는 사실 요리외에는 변변히 제대로 하는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청소도 그저 보이는곳만 쓸고 닦고,
손빨래는 물론이고 세탁기 사용법도 설명서를 보면서 공부했어요.
그때는 남편이 직장에 나가는걸 반대해서
하루종일 혼자 집지키고 있다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시절이었답니다.
하루는 갑자기 비가 와서 우산을 가지고 남편 마중하러 가다가
빗길에 미끄러져서 다리를 다쳐서 가족들을 걱정시키기도 했어요.
옛날 이라고 할것도 없는 얼마전 일인듯 싶은데
우식이가 내년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지금은 그 시절보다 많이 발전한 주부이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앞으로도 생활에 찌들어서 기운없는 주부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언제나 의욕과 패기가 넘치는 씩씩한 아줌마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철이 덜 들어서인지 소녀적인 취향이 남아있어서
놀림감이 되기도 합니다. 비싼 아로마향초를 켜놓고 있는다든지
포푸리를 만들어서 여기저기 실크주머니까지 만들어서 담아놓았어요.
아직도 실용적인것보다는 예쁜것이 더 좋거든요.
평소에는 카드를 쓰지 않는데 새로나온 향수가 마음에들면
카드로 산답니다. 예쁜 종지,접시,포크들을 보면 그만 충동구매를 해요.
아직 프로주부가 되려면 멀었지요?
어머니는 밥상차릴때 대충해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왕이면 예쁜그릇에 담아서 먹고싶은데.
어머님의 경상도식 표현으로 "꼭닥시럽다"고 하십니다.
꼼꼼하고 유난스럽다는 뜻이랍니다.
다른집에는 시어머님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우리집에는 바뀌었어요.
그래서 시누이가 언니집으로 안가고 우리집에 와서 산후조리를 한다나요?
매일 삶고 말리고 이불도 햇볕에 말린것만 덮어주니까
원래는 한달기한으로 했는데 두달 있다가 가겠다네요.
제가 뭘 잘못하고 있나 싶어요.
이게 아닌데 이러면 곤란한데.
내일부터는 구박을 좀 할까봐요. 빨리 가라고. 하 하 하.
이제 청소를 시작해야겠네요.
다음에 또 편지드릴께요.

영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