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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나뭇가지
ㆍ작성일	2004-04-17 (토) 13:35

ㆍ추천: 0 ㆍ조회: 230

ㆍIP:

어떤 아저씨의 글6
가끔 보았던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가 끝났더군요. 한동안 보지 못하다가 최종편을 보았습니다. 치매에 걸린 엄마에 대한 애절함 속에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귀찮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하시고 모든 것을 내어 주었던 우리들의 어머니를 그린 내용입니다. 바람기 난 남편과 이혼한 슬픔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엄마, 둘째 부인에게 신장까지 떼어 준 상상할 수 없는 헌신적인 사랑, 이제 망각의 세계로 자신의 자유의 시간을 항해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마음속에는 결혼 18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우리 가정을 돌보아 주셨던 장모님의 손길이 간직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사십이 훌쩍 넘어 얻은 막내딸에 대한 애정이 깊으셨던 분입니다. 손자들이 줄줄이 따라 다니는 늙은 나이에 임신은 창피한 일이라는 장인의 성화에 이끌려 산부인과에 갔다가 어머님은 의사가 소파수술을 준비하고 있을 때 몰래 도망쳐 오셨다 합니다. 그 때 만일 수술이 이뤄졌다면… 어머니는 생명을 어떻게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신혼 때 어렵게 셋방에 산 적이 있습니다. 몸으로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시고자 했던 그 분의 사랑의 흔적 중에 가끔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젊은 사위의 누런 팬티를 직접 손빨래로 해주시던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이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너무 깊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분과 한 이불에서 팬티만 입고도 잘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담 밑에 호박을 키워 따오시고 미나리와 쑥을 캐와 국을 끓여 주시던 장모님은 이제 구십고개를 넘고 계십니다. 이제 그 분도 드라마의 어머니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계십니다. 가끔은 멀리 산밑의 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보고 좋아하십니다. 틈만 나면 화장지를 접는 일이 그 분의 유일한 즐거움입니다. 누구에게 팔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팔 수도 없습니다. 어머님의 주머니는 화장지로 차있습니다. 유방 옆에도 속옷 속에도 휴지를 가득 넣어 두십니다. 그 분의 세계에는 빈 공간이란 없는가 봅니다. 그저 두루마리 화장지를 찢어서 접어두고 밀어넣고 쌓아둡니다. 침대 밑에도 책상 밑에도 가방 속에도 박스 안에도 화장지가 꽉 차 있습니다. 우리는 화장지 걱정이 없습니다. 급할 때 그 분의 몸을 뒤지면 쓰고도 남을 휴지가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셨던 그 분의 희생적인 삶 앞에 우리는 잠잠히 있습니다. 집을 잃어 버려 마음 졸이게 하실 지라도, 산더미 같이 화장지를 찢어 놓으시더라도 음식을 흘리실지라도 때론 아무 곳에서나 옷을 다 벗으실지라도 우리들은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 놓으시고 망각의 여행을 하고 계시는 그 분에게는 사위의 춤이 보약입니다. 사위가 기타치고 허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면 껄껄하고 웃어 주십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때의 순간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받았던 희생적 사랑을 다 돌려 드릴 수 없는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살아계시는 것으로 우리는 행복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아무것도 해주시는 것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고요. 아내는 ‘어머니와 같은 진실한 사랑’이라고 하더군요. 성경에는 비싸고 귀한 향유를 사랑하는 분(예수)의 발에 부었던 마리아란 여인이 나옵니다. 혹자는 그렇게 비싼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버리느냐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귀한 것을 줍니다. 귀한 향유는 향기로 가득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향기를 맡고 행복해 합니다. 우리는 그 진실된 어머니의 향기를 지금도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귀한 향유를 되돌려 드리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아~ 어머니!

** 줌마네님께
가정의 소중함과 회복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곳에 자주 글 올리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나 모르겠군요.. 남자에게도 열려있어서 들어왔지만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리구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