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애드]-옥외광고 전국네트워크

ㆍ작성자	나뭇가지
ㆍ작성일	2004-04-05 (월) 11:00

ㆍ추천: 0 ㆍ조회: 282

ㆍIP:

어떤 아저씨의 글 4
몇일 전 백화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은 가볍게 먹는 것이 좋겠다는 아내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유명하다는 샐러드가게로 들어갔습니다. 한 눈에 들어온 샐러드 가게의 풍경은 다양한 칼러풍의 먹음직한 질적인 식사류와 다이어트를 위한 컨셉이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꽉 메우고 있었고 안내원들이 분주하지만 잇몸이 보일 정도의 미소와 친절한 말씨만 보아도 소문난 식당임이 틀림없었습니다.

매일 된장 찌게만 먹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고 조금은 긴장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은 가격을 알고 난 후였습니다. 접시 크기 순으로 13,000원, 10,000원, 7,000원의 가격이었습니다. 아내는 조금 생각하다가 중간접시와 가장 작은 접시를 주문하였습니다. 먹는 방법은 선택한 접시에 먹고 싶은 것을 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단 1 회의 기회만 주어지는 접시치고는 너무나 작았습니다. 중간 크기라고 해봐야 어른 손바닥 만한 것이었고 작은 접시는 아이들 손바닥 크기였는데 아내는 저에게 중간 것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음식을 담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접시 든 폼이 조금은 어색하였습니다. 접시에 감자와 오이, 버섯류등을 담고 나니 접시가 꽉 차버렸습니다. 정말 두 입 정도면 먹을 분량이었습니다. 문화적인 체면과 품위를 생각하여 담는 것을 그만 멈추려 하는데 멀 리서 아내가 “ 더 마니~ ” 하며 사인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더 담을까 하고 앞을 보는데 스파게티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만난 듯 시선과 마음이 스파게티앞에서 고정되어버렸습니다.

스파게티는 갑자기 식욕을 돋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날의 스파게티의 빨간 소스는 매혹적이며 강렬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추장을 섞은 소스같았습니다. 큰 집게를 집어 들고 차곡 차곡 담기 시작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아내를 바라보니 체면을 중요시하는 남편치고는 잘하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힘이 이런 것인가요? 체면은 잊어 버리고 더 열심히 접시에 올려 놓았습니다.

정해진 자리로 돌아오며 스파게티가 흘러내릴까 노심초사하였습니다. 겨우 자리에 앉았는데 잔뜩 쌓아 놓은 스파게티가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몇 가닥의 면 가락만 접시 밖으로 밀려 내렸지만, 포크로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정말 타고난 순발력이 아니었다면…… 한 손으로는 집어 먹고 한 쪽으로는 막으면서 작업(식사라고 하기에는)을 하는데 이것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쪽 테이블만 보는 것 같아 얼굴이 빨개 졌습니다.

스파게티문제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고 나니까 아내가 접시를 들고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 웃기는… 이 정도는 먹어야지……맛 있겠다. ” 어른 한입의 작은 접시에 20센티 높이로 쌓아 올린 기술, 그것은 가히 예술이었습니다. 촘촘히 색깔별로 올려 놓은 샐러드는 마치 고대의 웅장한 탑을 연상케 했고 빨간 스파게티로 끝을 처리해 놓은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아내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위에서부터 차곡차곡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접시는 전부분이 빨간색으로 잠식되어 스파게티를 배터져라 먹어도 바닥에 남아있었던 싱그러운 샐러드조차도 빨간색으로 범벅이 되어 나중에는 무엇을 먹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서로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껏 웃고 웃으며 배가 불록 나오도록 먹었습니다.

먹기는 잘 먹었는데 돌아오는 발걸음은 참 무겁더군요. 그리고 저녁때까지 포만감과 싸워야 했습니다. 결국은 난생 처음으로 저녁을 굶게 되었습니다. 밤 11시가 되어도 배가 꺼지지 않아 아파트 주위를 몇 바퀴 돌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런 음식점을 다시는 가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한 번만 주어지는 기회는 우리 같은 촌 사람들에게는 욕심을 자극하기 쉬었기 때문입니다. 질적인 식사를 하기에는 허기진 아픔의 잔재가 남아 있나 봅니다. 아직은 눈치 안보고 양껏 먹는 것이 편한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