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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동욱
ㆍ작성일	2002-05-21 (화) 13:00

ㆍ추천: 0 ㆍ조회: 92

ㆍIP:

내가 살아온 날들.....
내가 살아온 날들.....

내가 이세상을 살아온 날이 오늘로 14205 일이다
어느새 참 많이도 살았다
그러나 살아온 날들에 비하면 잠잔 날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살아온 만큼 자야 하는데....

오늘밤도 새벽 4 시가 넘었다
미국에 국제전화 한통하고 잠깐 눈 붙이고 아침 일찍 서울로 나가야 한다
출근길에 움직여야 하니 차는 두고 오토바이로 나가야 하겠다
용산에 가서 프로그램 사고 폰트시디 사고 일산으로 돌아왔다가
성남시로 가서 간판견적과 디자인 상담을 해야 하고
다시 일산으로 돌아와 충청도와 강원도를 거치는 38 국도답사를 준비해야 한다
야립컨설팅준비와 성남간판건, 롯데백화점 부스디자인 등으로 일주일이 또 바쁘게 지나갈게다

잠을 자야 하는데 또 날이 새고 있다
오늘 아침도 잠시 피곤에 못이겨 깜빡잠을 자다 놀라 깨어났다.
살아온 날보다 잠을 잔 날이 부족한건 사실이다
청소년기부터 습관화된 밤공부 덕에...
그리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의 성질덕에...
편히 잠든 날이 많지 않다

14205

내가 살아온 날이다

오늘 밤도 짧은 잠을 청할 수 밖에 없다
조금 있으면 창밖으로 푸르스름하게 동이 틀 것이다

창문틀 사이로 난 작은 틈새로
커다란 벌이 한마리 날아 들어 왔다
엄지 손가락 만하다
저놈에게 쏘이면 꽤 아프겠다

저 벌은 얼마나 살았을까?
무슨 낙으로 살아 왔을까?

내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한 저 벌은 오늘 중으로 사망할 것이다
내 작은 작업실에서....

새벽에 불빛보고 날아든 벌에게 문득 미안함이 든다
어찌 되었든 나 때문에 이유도 없이 괴롭게 죽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성스레 창문열고 쫒아 낼 만큼의 여유로움도 없다
몸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다

머리는 웬만하면 살려줘라 하는데...
몸은 그런 것까지 신경쓸래? 한다

벌이 형광등주변에서 난리났다
웽 웽 웽
무서울 만큼의 날개소리다
벌거벟고 있는 나의 알몸위로 왔다갔다 한다
귀 주변으로도 왕왕 거린다

나의 무서움, 귀찮음, 짜증, 공포 등등의 모든 감정보다도 더
벌은 꽤나 괴로울 것이다

창문을 열어 준다고 나갈 가능성도 별로 없다
창문열고 방충망 열고, 커튼 열고 언제 나갈지 모를 벌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
참 황당한 일이다

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
나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별로 없다
벌은 그냥 오늘 밤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죽어갈 것이다

벌은 무슨 낙으로 살아왔을까?
지금 나와 같은 공간안에 있으면서
나는 키보드를 치고 있고 벌은 고통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벌이 나갈때가지 창문을 온통 열어두면 아침내내 파리와 잡충들이 들어올 것이다
보일러 틀어논 방의 온기와 형광등 불빛 사람의 냄새 등으로 말이다
별수 없이 나는 창문열기를 포기하고 벌을 포기 할수 밖에 없다

나는 잠도 부족한 바쁜 날들 속에서
내방에 찾아든 벌때문에 몇십분을 고민하고 그 때문에 또 몇십분을 잠을 설쳐 댈 것이다

벌은 점점 죽어간다
심각한 충격과 압박감 때문이리라

차라리 파리채로 몇대 때려 죽이는게 <효율>적일지도 모를 일이다
말이 발을 다치면 총으로 쏴죽이는 영화속 장면처럼(그 이유는 모른다)
그게 효율적 일지...

사는게 어찌보면 그렇게 단순한 건지도 모른다

아주 간단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속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욕심내고 고민하고 실행한다
나도 그렇다

살아온 날이 14205 일이다
내 나이 40이니 어찌보면 반은 더 살았지 싶다
적극적인 활동시기를 60 정도로 보아 남은 시간이 짧다
대략 7,000 일 정도 남은 셈이다

7,000 일 동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랗게 기다리고 준비하던 일들이 눈앞에 닥쳐 왔지만
나에겐 아직 준비가 덜 되 있고 부족한 것 투성이다

어깨가 아파온다
형편없는 타자실력 때문이다

잠시 누워 지친 몸뚱아리 피곤이나 덜어 줘야 겠다
아침이면 오토바이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한다

벌은 죽었는지 날개짓도 없다
겨우 몇십분 만에 죽는다......

전에 들어 왔던 놈은 파리채에 희생 됐었다
오늘은 ...
어제가 부처님 오신날이라는 생각에 살생이라는 것이 생각난 밤이다

살려 주지는 못할 망정.......
불필요한 살생은 가급적 안하는게 낫다

김동욱